본문 바로가기

역사 인물 이야기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 (5) 안동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5) 안동 평화의 소녀상

 

 

많은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틈날 때마다 찾아다니고자 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 인권 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저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는 나만의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존경을 표하는 내 나름의 재능 기부 방식이다.

 

,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고 보고,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경북 지역에서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안동시.

지난 20178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대통령이 직접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룡 집안과 임청각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일시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그 고장의 독립운동 기념관이 있는 곳, 대궐 같은 99간 임청각에서 편안히 사는 삶을 팽개치고 재산을 모두 처분한 다음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고 그 집안에서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석주 이상룡으로 대표되는 고성 이씨 집안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돋보이는 고장,

 

독립운동가 이상룡을 배출한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의 군자정

 

 

일제 강점기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고장,

장엄한 목소리로 광야’, ‘청포도등의 시를 써 일제에 직접 저항한 이육사의 고장,

가장 보수적인 고장이지만 국가의 위기에 처하여 혁신 유림이라 할 공화주의자, 민족주의자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도 다수 배출한, 좌우익을 망라한 인재의 고장이 바로 안동이다.

-그러고 보면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등 조선시대에도 숱한 인재를 배출했다-

 

안동 출신의 저항 시인 이육사

 

낙동강 지류의 두 줄기가 만나 비로소 제대로 강이 되어 동네 앞을 흐르던 면면한 기상이 안동에 서려 있다.

퇴계 이황의 보수 유교, 이기일원론으로 근본을 따지는 철저한 유교 이념의 전통이 살아 있어서일까. 과거에는 길거리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면 어르신들이 달려가 뺨을 쳤다는(안동 출신 선배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 지독할 정도로 보수적인 고장이지만, 필요하면 보수를 버리고 혁신과 개혁의 길을 갔던 그 담대함과 용기가 서려 있다.

 

영호루에서 낙동강을 건너다본 안동 시내

 

말로만 떠들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뒤로 발을 빼는 비겁한 사람과 집단들이 많은 시대일수록 그들의 용기와 기개에는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고장이며 할 말도 많은 고장이다.

 

이 고장에 올해 2017815, 경북에서는 네 번째로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섰다.

 

웅부공원에 복원된 안동 대도호부 관아 건물 영가헌

 

장소는 웅부공원.

조선시대 안동대도호부가 자리했던 곳으로, 2006년 안동시가 영가헌과 대동루 등을 복원하여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한 공원이다.

 

안동미술협회 회원들이 안동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목표액인 6천만원에 조금 모자랐지만, 미술협회 회원들의 재능 기부 형식으로 비용을 절감하여 그들에 의해 만들고 세워졌다.

 

 

 

권택기 추진위(18대 국회의원) 공동 대표의 말,

전국에서 독립운동 유공자, 지정 순국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매우 뜻 깊다. ... 오늘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올바른 역사관을 잡아주게 되길 바란다. 이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이 없는 일본의 그릇된 행태를 알 수 있게 하여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녀상 건립의 의의이다.

 

안동은 몇몇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증언 채록집 내가 어떻게 말을 해요. 어무이 가슴에 못 박을라꼬를 낸 () 김옥선 할머니, 11세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김외한 할머니 등이 안동 태생이다.

 

이들의 증언을 없는 듯 싹 무시하며, 본인들의 자율적 의사에 의해 위안소에 갔고, 이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며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본 정부, 일본 우익의 태도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반적인 평화의 소녀상과 다른 모습이다.

청동(브론즈)으로 제작된 소녀상은 155cm 정도의 키에 52kg 정도의 체중을 가진 당시 평균치인 소녀의 모습으로, 일본에 끌려갔다 돌아올 때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그래서 다른 소녀상과 달리 손에 작은 보자기를 들고 있다.

 

 

그녀가 앉은 황금색 바위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언덕 위에서 고향 마을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하며,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왼손은 다시는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의미한다고 한다.

 

앞으로 내딛은 왼발은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를, 뒷꿈치를 든 오른발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다급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뒤편 바닥의 그림자는 시대와 사회와의 단절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소녀와 고향을 이어주는 고리의 역할도 한다.

 

 

소녀상 바로 옆에 서 있는 대동루 

 

가장 일반적인 소녀상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안동 평화의 소녀상은 좀 더 풍부한 상징성과 의미를 담고 웅부공원 앞 길가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안동 출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저세상에서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거나 평화롭게 여생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