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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 답사 이야기/경주 문화유산 답사, 여행

괘릉(원성왕릉) - 볼거리 많고 분위기 좋은 화려한 왕릉

 

# 괘릉 (원성왕릉) - 볼거리 많고 분위기 좋은 화려한 왕릉

 

 

통일신라 선덕왕 때 진골 귀족이자 이찬이었던 김경신이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머리에 쓴 복두를 벗고 흰 갓을 썼는데, 갑자기 열두 줄 가야금을 들고는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는 점쟁이를 찾아가 해몽을 부탁했다.

 

복두를 벗은 것은 벼슬을 잃을 조짐이고, 가야금을 들었다는 것은 칼을 쓸 조짐이며, 우물에 들어갔다는 것은 감옥에 갈 조짐입니다.”

그는 이 말에 충격을 받고 근심하여 병을 핑계로 집안에 근신하였다.

 

괘릉(원성왕릉) 진입로

 

그런데 당시 아찬 여삼이란 사람이 굳이 찾아와 해몽을 다시 해 주었는데,

이는 정말 상서로운 꿈입니다. 복두를 벗은 것은 더 높은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흰 갓을 쓴다는 것은 면류관을 쓸 조짐입니다. 열두 줄 가야금은 12대 후손까지 왕위가 이어질 조짐입니다.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에 들어갈 조짐입니다.”

라고 하였다. 사실상 왕이 된다는 말.

덧붙여 한 가지를 당부하였다.

 

북천신(北川神)에게 몰래 제사를 드리십시오.”

그는 기분이 풀어지면서 그 말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

 

괘릉 문인석과 무인석

 

얼마 후 선덕왕이 자식 없이 사망하였다.

당시 귀족들은 회의를 통해 서열 1위인 김주원을 왕으로 삼고자 그를 궁궐로 맞이하려 하였다. 김주원의 집은 북천 너머에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서열 2김경신이 먼저 궁궐에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원성왕이다.

 

고려 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꿈보다 해몽이다, 라는 말은 여기에 해당하는 말인 듯하다.

꿈의 내용보다 인간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

 

 

김경신, 원성왕이 된 그의 무덤을 흔히 괘릉이라 한다.

 

괘릉은 신라 제 38대 원성왕(785-798)의 능으, 신라 모든 왕들의 무덤 중에서 가장 볼거리 많고 화려하여 가볼 만한 곳이다.

게다가 통일신라 때의 능묘제도를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어 왕릉 답사지로도 첫손에 꼽히는 곳이다.

괘릉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곳에 작은 연못이 있었기 때문에 왕의 유해를 연못 위에 걸어서 장사 지냈다는 속설에 따른 것이다.

 

 

본래 이곳에는 곡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원성왕의 능을 찾을 때 절 자리를 뺏는 것은 좋지 못하다.”라는 일부 신하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왕들이 훌륭한 곳에 자리 잡으면 왕실의 복이 산처럼 높이 솟을 것이라는 주장에 밀려 이곳에 왕릉이 만들어지고 곡사는 지금의 숭복사터로 옮겨졌다.

 

 

괘릉에 들어서면 정면 중앙의 왕릉을 중심으로 잔디밭이 길게 이어지고, 양 옆으로 문인상 1쌍과 무인상 1, 돌사자 상 2쌍이 약 20m 간격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봉분은 밑 둘레 70m, 높이 7.7m이며, 봉분 밑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고, 그 주위로 수십 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둘렀다.

십이지신상은 지금도 꿈틀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조각 수법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명하고 주목받는 것은 무인석이다.

한국 사람의 얼굴이 아닌, 명백한 서역인(이슬람인)의 모습을 한 무인석은 그네들의 키 크고 수염 기른 당당한 모습이 신라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으리라 추측된다.

 

눈이 깊숙하고 코가 우뚝하며 곱슬머리인 무인상은 신라가 무역이 발달하여 중국은 물론 서역과도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필 무인상의 모습이라는 것은 그들이 키가 큰데다 힘도 세 보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팔 근육까지 표현해냈다. 하여간 여전히 흥미로운 상이다.

 

웃고 있는 돌사자상

 

네 마리의 사자상도 자세히 보아줄 만하다. 두 마리씩 마주 보고 있는 사자상은 각기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는데, 자기가 지키고 있는 방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사적 제 26호이다.

 

문인석

 

무덤의 주인공 원성왕은 당대의 진골 귀족으로, 서열이 앞서는 김주원과 왕위 계승을 다투다가 전 왕인 선덕왕이 죽은 뒤 북천의 물이 넘쳐 김주원이 궁궐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 때 서둘러 궁궐에 들어가 왕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김경신이 즉위하자 곧 비가 그쳐서 귀족들이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이는 김경신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권력투쟁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밀린 김주원은 강릉으로 옮겨 가서 살게 되며, 후에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다. 그 후 신라 말기의 왕들은 이 원성왕의 직계들이 계승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괘릉은 지금까지 온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고, 여전히 분위기가 좋다.

 

 

하지만 알고 보면, 원성왕의 무덤이라는 증거는 없다. 지금까지 추정으로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아침이나 저녁 무렵 무인상과 사자상에 그림자가 어려 상의 윤곽이 뚜렷해질 때 가보면 좋다. 조각이 더 도드라져 입체적으로 보인다.

 

 

추천 여행 코스(당일)

1코스: 괘릉(1시간)5영지(40)10숭복사터(40)15원원사터(40)

2코스: 괘릉(1시간)5구정동 방형분(30)15불국사(1시간 30)15→→석굴암(1시간)

 

주소 및 기타 정보

주소: 경주시 외동읍 신계입실길 139, 구 주소 외동읍 괘릉리 산17

입장료 없음.

주차는 50대 이상 가능, 주차료 없음

서역인의 무인상과 웃고 있는 돌사자상이 이 무덤의 포인트이다. 꼭 확인하자.

 

 

가는 길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경주IC직진 진행하다가 인왕동 사거리에서 우회전7번 국도 울산 방향을 따라 내려가면 불국사 입구를 지나 약 3km 진행, 좌측에 안내판이 있고 시멘트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500m 들어가면 왼쪽에 있다.

 

대중교통

경주역과 시외버스터미널, 고속터미널 앞 등 경주 시내 주요 지점에서 600, 605, 607, 609 번 등 버스를 이용, 괘릉 입구에서 하차하여 10분 정도 걸어간다. 600번 버스가 자주 다닌다.

 

맛집

괘릉 가는 국도변과 불국사 방면에 먹을 만한 집들이 제법 있다.

 

석거돈 (낙지+돼지두루치기, 낙지볶음, 054-746-6308)

고색창연 (떡갈비정식, 054-748-0952)

유수정 (쌈밥, 054-771-0786)

고래등 한정식 (보리굴비정식, 054-741-4667)

마당발 쭈꾸미 (주꾸미 철판볶음, 떡갈비, 054-748-9977)

 

숙박

숙박은 괘릉 주변과 불국사 일대의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호텔, 펜션들이 많다.

 

경주 코오롱호텔 (054-746-9001, www.kolonhotel.co.kr)

보보뚜펜션 (반려견펜션, 010-6583-3487, http://blog.naver.com/bobotu669)

도도펜션 (010-2523-5800, www.dodopension.kr)

씨엘블루펜션 (010-9638-8787, www.cielbleups.kr)

탑클래스펜션 (054-741-9988, http://topclass1.kr/)

솔바람사이길펜션 (054-742-4111, www.solbaramgil.co.kr)

허브캐슬펜션 (054-742-0890, www.herbcast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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